[기고] 장애인연금, 왜 빈곤 보충금일 수밖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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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애인연금, 왜 빈곤 보충금일 수밖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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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연금, 왜 빈곤 보충금일 수밖에 없는가

”장애인연금
장애인연금 현실화 피켓.ⓒ에이블뉴스DB


한국에서 ‘장애인연금’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장애가 있으면 당연히 받는 연금인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장애인연금은 이름만 연금일 뿐, 실제 기능은 ‘빈곤 보충금’에 더 가깝다. 장애인의 권리로서 보장되는 제도가 아니라, 극빈층 장애인에게만 지급되는 제한적 현금 급여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연금은 지난 2010년 도입됐다. 제도의 명분은 ‘중증장애인의 생활 불편을 일부 보완하고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지급 대상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으로 제한된다. 같은 장애라도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을 넘어가면 연금을 받을 수 없다. 즉, 장애 자체보다 ‘얼마나 가난한가’가 더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연금은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라, ‘빈곤층을 위한 생계 보충금’에 불과하다. 휠체어 유지비, 이동 교통비, 재활·의료비, 일상생활 보조인의 지원비 등은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비용이다. 하지만 소득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도, 기초수급자가 아니면 제도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한국의 장애인연금은 선별적 지원 구조 때문에, 실제로는 많은 중간 계층 장애인을 사각지대에 몰아넣는다. 소득이 조금 있다고 해서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가난하지 않다는 이유로 추가 비용을 감당하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 지원을 받는 기초수급자와는 달리, 이들에게 장애인연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름에 불과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한국 제도의 한계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영국은 ‘개인독립지급금(PIP)’ 제도를 통해 장애인의 소득과 무관하게 생활비를 지원한다. 독일은 장애 정도와 노동 능력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며, 저소득 여부는 보조 기준일 뿐이다.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 체계 속에서 장애인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해, 장애로 인한 생활 격차를 최소화한다. 반면 한국은 소득이 기준을 넘으면 장애인연금에서 제외된다. 이름은 같지만, 실제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연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재정 부담이다. 모든 장애인에게 보편적 연금을 지급하려면 예산이 크게 늘어난다. 정부는 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제도 확대에 소극적이다. 여기에 선별 복지라는 기존 정책 문화와 장애계의 낮은 정치적 영향력, 사회적 관심 부족이 맞물려 제도 개편은 요원하다.

하지만 장애인연금의 의미를 ‘빈곤 보충금’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장애는 단순히 소득과 연관되지 않는다.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모든 장애인에게 존재한다. 사회가 이를 외면한 채, ‘가난한 장애인만 돕는다’는 식으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형평성과 정의의 문제다.

장애인연금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을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소득 여부와 관계없이, 장애 자체가 만들어내는 생활 부담을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 둘째, 보편적 권리로서 연금의 성격을 확립해야 한다. 모든 장애인이 최소한의 연금을 보장받고, 저소득층에는 추가 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셋째, 급여 수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현재 지급액은 생활 보장을 넘어설 수 없는 수준으로, 실질적인 지원이 되도록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 넷째, 사회적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장애인은 이미 충분히 지원을 받는다는 편견을 깨고, 장애가 부과하는 구조적 비용을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

장애인연금은 단순한 현금 지급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장애인의 삶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를 보여주는 잣대다. 지금처럼 기초생활수급자에게만 지급되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제도는 이름뿐인 연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장애인연금이 ‘빈곤 보충금’에서 벗어나, 모든 장애인의 권리로 거듭날 때, 우리는 장애인을 더 이상 빈곤의 범주로만 보지 않고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게 된다. 한국 사회가 장애인연금을 보편적 권리로 전환할 때, 비로소 제도의 이름값과 의미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김양희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 연락을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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