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언어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복지의 언어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정보 접근에서 배제되는 장애인들
도움’의 문턱에 또 다른 장벽이 있다. 복지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정작 그 복지를 설명하는 언어는 지나치게 난해하고 난폭하다. 법률 용어, 행정 절차, 조건부 자격, 수급 요건 같은 말들은 장애인 당사자에게 또 하나의 장벽이 된다. 복지를 신청하기 위해 복지의 언어를 먼저 해독해야 하는 현실은 이미 모순이다. 인지적 취약성을 지닌 장애인,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알아듣지 못해 신청하지 못하는’ 간극이 더 크다. 복지 제도는 존재하지만, 제도가 다가오지 않는 상황. 이것이 바로 한국 복지의 숨겨진 문제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 용어 ─ ‘한 문장이 왜 이렇게 긴가’
복지 제도를 설명하는 안내문은 마치 전문가끼리만 이해하라는 듯 구성된다. 하나의 문장은 여러 개의 조건과 단서 조항을 품고 있고, 핵심은 흐려진다. 예를 들어 “소득·재산 기준 충족 시”라는 문장은 실제로는 ‘가구 구성’, ‘소득 인정액 산출 방식’, ‘재산의 소득환산 방식’이라는 또 다른 하위조건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 용어를 설명하는 문서조차 전문 용어로 가득하다.
이런 구조는 결국 ‘나는 못 알아들어서 포기했다’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정책은 존재하지만, 언어가 진입을 가로막는다. 특히 발달장애인이나 노령 장애인에게는 안내문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워 결국 기관에 직접 방문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한 설명을 제공받지 못한 채 서류만 받아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
정보 접근의 격차 ─ 비장애 중심의 안내 방식
복지정보는 대체로 텍스트 중심이다.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 사이트, 지자체 홈페이지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로 구축되어 있어 시각적·인지적 접근이 어렵다. ‘쉬운 안내’는 홍보문에는 등장하지만 실제 양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음성 읽기 기능이 있어도 표나 이미지로 삽입된 문서는 읽히지 않고, 모바일 접속 시 오류가 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의 접근 방식’을 고려하지 않는 구조적 한계다.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등이 어떻게 정보를 접하는지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은 시스템에서는, “알아서 찾아보라”는 말 자체가 비현실적인 요구가 된다. 복지의 문은 열려 있지만, 문턱은 줄어들지 않았다.
설명해줄 사람에 대한 의존 ─ 결국 가족에게 돌아가는 구조
정보가 어렵고 신청 절차가 복잡할수록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가장 흔한 경우가 가족이다. ‘대리 신청’, ‘대리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결국 장애인의 독립성을 침해한다. 장애인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타인의 해석이 필요한 상황은 이미 권리가 아닌 권한 위임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족이 없거나 지원이 제한적인 장애인들은 아예 정보 접근이 차단된다는 점이다. 결국 복지 서비스는 ‘가족이 있는 사람’, ‘설명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사람’, ‘행정 용어를 해독할 정도의 학력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도달하게 된다. 이는 제도의 공정성을 해치는 비가시적 차별이며, 사회적 고립이 심한 장애인에게 가장 먼저 닿아야 할 복지가 오히려 가장 멀게 느껴지는 이유다.
공공기관의 ‘불친절한 친절’ ─ 알려주지만 알려주지 않는 설명
기관에 직접 방문하면 안내는 받지만, 충분한 설명은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다. 담당자가 빠르게 읽어주며 핵심을 건너뛰고, 필요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거나, 질문을 해도 추상적인 답변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친절 문제가 아니라, 기관의 업무 방식이 ‘어려운 언어를 기본값’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몰라도 서류부터 내라’는 분위기다. 미비 서류로 반려될 가능성을 알면서도 설명을 생략하는 관행은, 장애인에게 또 한 번의 허탈함을 준다. 행정은 친절하게 보이지만 결국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복지 언어의 난해함은 행정 조직의 관성에서 비롯되며, 이는 제도적 개선 없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성장애인의 이중 장벽: 복지의 언어는 젠더를 고려하지 않는다
여성장애인은 복지 정보 접근에서 두 겹의 장벽을 마주한다. 첫째는 장애로 인한 정보 접근 제한, 둘째는 돌봄·가사·생계 부담으로 인해 정보를 찾아 나설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적다는 현실이다. 특히 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장애인의 경우, 긴급한 상황에서조차 복지의 언어는 너무 복잡하여 현실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 지원, 긴급 주거 지원, 의료 지원 등 반드시 신속하고 명확해야 할 절차조차 전문용어와 조건 설명이 길게 이어져 당사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젠더 관점이 배제된 복지 언어는 여성장애인을 또 한 번 주변부로 밀어낸다. 정보의 난해함이 곧 위험이 되는 것이다.
‘쉬운 말’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다
복지는 존재만으로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권리가 당사자에게 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그러나 현재의 복지 언어는 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행정 중심의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어려운 말은 인간을 배제하고, 접근하지 못한 정보는 곧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 특히 사회적 고립과 취약성이 높은 장애인에게는 ‘읽히지 않는 복지’, ‘이해되지 않는 복지’가 가장 큰 장벽이다.
이제 복지 언어는 바뀌어야 한다. 쉬운 문장, 시각·청각·인지 접근성을 고려한 안내, 장애인 당사자의 실제 이해 방식을 반영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복지 정보는 친절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배려가 아니라 기본권이며, 복지가 인간의 삶을 지지하는 제도임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